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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tvN |
가족이기 때문에 머뭇거림도 없이 사랑한다고 자신하면서도, 생각지도 못했던 가족의 속내나 취향을 뒤늦게 알고는 뜨끔하게 되는 일들이 살다가 보면 한 번쯤 생긴다. tvN 월화극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극본 김은정·연출 권영일, 이하 가족입니다)가 그런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에 훅 들어와 격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몇 해 전 인문학 TV 강연이 붐을 이루기 시작하던 무렵 TV에서 우연히 접한 한 철학자의 독설이 뒷골을 당겼던 기억이 있다. 그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인지 모르면 당신은 아버지를 정말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철학자가 설파하려던 이야기는 그게 다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지금 뇌리에 남아있는 건 그 한 문장뿐이다. 그가 그렇게 뾰족하게 말한 이유는 굳이 지적질을 하려 했다기보다는 그만큼 가족에 대해서, 부모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걸 직시하게 하려 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지금 방영중인 ‘가족입니다’는 그런 우리를 보듬어주듯 가족이라도 잘 모르는게 많고, 가족이라서 더 모르고 지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왕년의 스타 원미경이 무게중심을 잡은 ‘가족입니다’는 어느 날 자식들에게 졸혼을 선언한 어머니 이진숙(원미경)과 그날 마침 야간산행 중 실족사고로 기억이 22살이 되어버린 아버지 김상식(정진영)으로 인해 가족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원래 야간산행을 다니셨냐”는 절친 박찬혁(김지석)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둘째 딸 김은희(한예리)의 모습은 예사다. 트럭 운전을 하는 아버지가 그동안 트럭 안에 수면제를 한 병 가득 가지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은희나 그 가족들은 아버지가 자살을 시도하려 했거나 우울증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그런 것도 모르고 무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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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tvN |
특히 은희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때마다 대학가요제 수상곡을 테이프에 녹음해주며 아버지의 플레이리스트를 줄줄이 꾀는 등 아버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언니 김은주(추자현)와 이야기 중 “수면제, 우울증, 아버지와 안 어울려”라고 말했다가 은주에게 면박을 당했다. 은주 말마따나 중졸에 트럭 운전이나 하는 아버지라고 멋대로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건 비단 은희만은 아닐 것이다.
은희는 문화센터에 다닌다고 둘러대는 진숙의 책상 위에서 사회복지사 관련 책을 발견하는가 하면 진숙이 집앞 과일가게 주인과 함께 차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도 보지만, 자초지정을 묻지 않았다. 말로는 무조건 엄마 편이라면서도 엄마의 생각이 무엇인지 제대로 묻지 않는 건 그간 세월 속에 터득한 관계유지의 방식일까. 우리도 은희처럼 평소 부모님에 대해 알려 하지도 않은 채 선입견으로 지레짐작하며 사는 건 아닐까. 드라마는 보는 내내 나와 가족과의 관계를 되짚게 만들고 있다.
은주와 은희, 두 자매의 창과 방패 같은 관계는 이 드라마의 정수다. 어느 집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 현실 자매의 모습이어서 드라마와 관련된 온라인 대화창에는 “우리 언니 보는 줄 알았음” 등 자매를 둔 시청자들의 반응들이 뜨겁다. 있는 힘껏 모질게 말해 상처를 주지만, “가족인데 그런 말도 못해”라고 반문하며 서로에게 당당하다. 9년 연애 끝에 연인의 외도로 종지부를 찍은 은희는 위로를 기대하며 언니 회사까지 찾아가는데 은주의 이성적인 조언에 폭발하고 말았다. 결국은 5년을 연락도 없이 지냈던 두 사람인데, 부모님 일로 재회하고는 몇분만에 “잘못했다”는 은희의 사과 몇 마디로 “허”하고 실소를 터뜨리며 지나간 시간은 뒤로 하는 은주였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는데 한 뱃속에서 나고 자란 형제자매는 오죽할까.
그리고도 두 사람은 아버지를 챙기느라 마주하게 되면 매사 투닥투닥 한다. 과거의 같은 사건으로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데, 은희는 “내가 말하는 게 팩트”라고 주장했다. 은주는 “기억이 그렇게 달라요, 팩트라고 얘기하지 마”라며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줬다. 같은 일을 두고도 언니와 동생의 기억이 다르고, 아내와 남편의 기억이 다르다는 걸 드라마가 여러 장면에 녹여 보여주고 있다. 상식이 과거 쪽지로 사랑고백을 했던 진숙을 떠올리는데, 진숙은 그런 적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기억의 착각이다. 가족은 그렇게 다른 기억 속에서 오해가 쌓이고도 모른 채 함께 살아가게 되나 보다.
창과 방패 같던 자매는 은주의 남편 윤태형(김태훈)이 게이였다는 사실을 같이 알게 되면서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울분에 찬 은주의 몸부림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고 난 은희는 “형부, 집에서도 (게이인 거) 모르겠지”라고 말하고, 뒤이어 은주는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을 몰랐네, 남편이 아니었으면 알았을텐데 가까이 있어서 몰랐네”라며 자조하듯 말했다. 가족이어도 잘 모른다는 걸 새삼 깨달은 두 사람은 이제 싸우더라도 붙어있게 됐다. 태형을 찾아 소록도까지 내려갔던 은주는 먼저 와있던 은희를 원망하며 아픈 말을 쏟아내지만, 은희는 5년전 자신을 떠올리며 언니를 이해했다. 소록도에서는 먼저 보냈지만, 서울에 올라와 보니 은희와 같이 있어야겠다 싶은 은주는 그동안 주소도 몰랐던 은희의 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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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tvN |
이렇듯 서로를 더욱 알아가는 중인 이 가족에게는 매회 불쑥불쑥 새로운 비밀들이 튀어나오면서 드라마의 재미를 높여주고 있다. 태형의 커밍아웃을 비롯해 은주가 상식의 친딸이 아니었던 사실과 상식에게 혼외자가 있는 듯한 에피소드가 앞서 나왔다. 무엇보다 상식이 정말로 불륜을 저질렀던 것인지, 혼외자인지 확인이 되지 않은 채 잠적한 영식의 정체나 행방으로 궁금증이 극에 달하는 중이다.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 등은 막장드라마의 흥행공식이라며 폄훼하던 것들인데, ‘가족입니다’는 그런 것들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녹여낸 모습이다.
남다른 대본의 힘이 느껴지고, 영상미까지 더한 몰입도 있는 연출력까지 어우러져 결이 다르고 격이 다른 웰메이드 드라마가 되고 있다. 배우들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다. 원미경은 가족을 챙기며 숨죽여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모습을 흡입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세월을 거슬러 젊음을 유지하는 게 미덕인 요즘 자연스러운 노년의 모습으로 연기하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힘을 뿜어내고 있다. 정진영은 불같이 호통치는 남편과 22살 사랑꾼 상식씨를 오가는 모습으로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 감탄하게 만든다. 한예리는 갑작스러운 연애에 가족일까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현실 속 친구처럼 귀엽고 편하게 보여주며 드라마 속 화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추자현은 얼음공주 같은 완벽하고 차가운 매력을 보여주며 맏딸 캐릭터의 설득력을 높이고, 김지석은 사려 깊은 절친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동시에 은희와 은주, 거기다 회사에서는 서영(신혜정)까지 러브라인의 다양한 가능성을 엿보이며 여성팬들의 설렘지수를 높이고 있다.
마음을 먹먹하게 하고 눈물짓게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가족들의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웃음이 삐져나오게 되는 ‘가족입니다’는 앞으로 서로가 할퀴었던 상처를 어루만지고 관계를 회복할 거라 기대된다. 그런 믿음이 기저에 깔려있는 이유는 그게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런 희망을 ‘가족입니다’가 보여주고 있다. 또한, 완벽한 절친 찬혁이 은희와 맺어져 가족이 된다면, 이들 또한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절친에서 서로 잘 모르는 가족으로 변모하게 되는지 새로운 궁금증을 낳을 것이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편만 보고 말 사람은 없을듯한 꽉 찬 재미의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가 시청자들을 ‘가족의 세계’로 푹 빠져들게 하고 있다.
조성경(칼럼니스트)
June 17, 2020 at 08:15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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